오히려 나는 다른 두 가지 종류의 불만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저항의 정치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인류학적인 불만이다. 첫 번째 불만은 저자들과 기자들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렇게 글을 풀어낸다 해서 아무 것도 꿈쩍도 하지 않을 것만 같다는 점이다. 숱한 촛불, 용산, 김예슬 선언, 반값 등록금 투쟁, 강정에서 발견한 어떤 '불가능성'과 '비장 르포'에서 느끼는 감정이 같다.
그리고 두 번째 불만은 서사에 동원된 사람들의 목소리의 다양함이 온전히 제거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늘 불쌍하고 착한 사람들. 괴롭히려 드는 '악의 무리'같은 흡혈귀(자본가)와 깡패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협잡꾼들. 그 구도에서 선택의 여지는 전혀 없는 것만 같아 보인다.
소개하려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최희봉 옮김, 부키 펴냄)은 '비장 르포'들과 전혀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그리고 에런라이크의 서술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더 효과적인 글쓰기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