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애덤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잠깐 애덤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보기

저자 : 카트리네 마르살 / 역자 : 김희정
분야 : 경제/경영
출간일 : 2017-02-03
ISBN : 9788960515840
가격 : 15,000원

애덤 스미스의 저녁을 차린 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였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1776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그러나 당시 애덤 스미스가 ···

책소개

유쾌한 페미니스트의 경제학 뒤집어보기

애덤 스미스의 저녁을 차린 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였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1776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그러나 당시 애덤 스미스가 잊은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저녁을 차려 준 그의 어머니다.

잊힌 것이 그의 어머니뿐이겠는가? 『국부론』에 등장한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 대신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 했던 그들의 부인이나 누이의 모습 또한 찾아볼 수 없었다. 애덤 스미스가 구상한 세상은 단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었다. 남성만이, 그리고 그가 하는 일만이 의미를 갖는 경제.

저자 카트리네 마르살은 애덤 스미스의 초기 사상부터 현대 여성들이 직면하는 불평등한 사회 및 경제 구조뿐 아니라 현대 금융 위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짚어 보며, 때로는 풍자적으로, 때로는 날카롭게 여성과 경제학, 그리고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카트리네 마르살

카트리네 마르살은 웁살라대학교를 졸업하고 스웨덴의 유력 일간지 『아프톤블라데트(Aftonbladet)』의 편집주간을 지내며 국제 금융 · 정치와 페미니즘에 대한 기사를 주로 썼다. 경제학과 가부장제의 관계를 논한 저서 『유일한 성(Det enda könet)』으로 2012년 스웨덴 내 유력 문학상인 아우구스트프리세트(Augustpriset)의 논픽션 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다른 저서로 『강간과 로맨스(Våldtäkt och romantik)』 『회색의 구조(Den grå vågen)』가 있다. 현재 영국 런던에서 거주하고 있다.

 

옮긴이 김희정

김희정은 서울대 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가족과 함께 영국에 살면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인간의 품격』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 『채식의 배신』 『거짓말쟁이 호머 피그의 남북전쟁 모험』 『모털 엔진』 『사냥꾼의 현상금』 『악마의 무기』 『황혼의 들판』 등이 있다

 

 

<차례>

 

리먼 브라더스가 리먼 시스터스였다면? _10

 

1장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는 누구였을까? _17

2장 애덤 스미스의 경제적 인간을 소개합니다 _33

3장 차별을 합리화하는 경제학자들 _49

4장 세상에 유일한 진리는 경제학뿐? _67

5장 경제학이 여성을 가뿐히 무시하는 방법들 _87

6장 사상 최대의 도박장, 월스트리트 _105

7장 『파우스트』 속 황제의 궁정부터 현대의 금융 위기까지 _123

8장 남자는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착각 _143

9장 어떻게 자극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 _159

10장 돈을 요구하면 이기적인 사람이다? _175

11장 90퍼센트를 위한 세상은 없다 _191

12장 인간이 하나의 기업체가 되는 세상 _209

13장 어머니를 잊은 자들에게 미래는 없다 _223

14장 인간이 섬처럼 홀로 존재할 수 있다는 환상 _237

15장 왜 중요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늘 남성일까? _257

16장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용기 _271

 

우리에게도 경제학이 필요하다 _288

주 _300

참고문헌 _314

찾아보기  _325

 

 

<내용: 본문 맛보기>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절반의 답을 찾은 데 불과하다. 그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상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어머니가 매일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를 수 있도록 보살폈기 때문이다.

-본문 32쪽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실제로 여성이 청소를 더 잘하도록 타고났다고 주장했다. 이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는 그 이유를 여성의 질이 본래 더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문지르고 닦고 터는 것은 자신의 신체에서 느끼는 더러운 느낌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질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여성의 성기는 자체 조정 기능을 갖춘 기관으로, 사람의 입보다도 깨끗하다. (…) 프로이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무보수 가사노동에 더 적합하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공공 부문의 일자리에서 터무니없는 저임금을 받으면서 혹사당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경제력과 남성의 성기를 묶는 전 세계적 추세를 제대로 합리화하려면 다른 데서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본문 62쪽

 

돈을 나눠 가질 때, 5세 어린이들은 돈을 공평하게 나누는 것에는 전혀 관심 없고 가능한 한 많이 가지고 싶어 했다. 가질 수 있는 액수가 적은 경우에도 아예 못 받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일단 쥐고 봤다. 경제적 인간처럼 말이다. 그러나 세계경제를 운영하는 것은 5세 아이들이 아니다.

아니면 실은 5세 아이들인가?

-본문 149쪽

 

약 100년 전 하노이에 흑사병이 돌았다. 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당국은 쥐잡이들을 고용해 쥐를 죽이는 임무를 주었다. 곧 분주하게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이 쥐를 잡는 속도보다 쥐들이 번식하는 속도가 더 빨랐다. 하루에 수천 마리를 죽이는데도 쥐의 숫자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프랑스 식민 당국은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쥐꼬리 하나당 보상을 내건 것이다. 처음에는 아주 성공적인 듯했다. 매일 수천 개의 쥐꼬리가 들어왔으니까. 그러나 당국은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거리에 꼬리가 잘린 채 기어 다니는 쥐가 넘쳐 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꼬리를 잘라 보상을 챙길 목적으로 쥐를 기르기까지 했다. 많은 경우 보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일만을 하고,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딱 투입하는 만큼만 받게 되기 때문이다. (…) 경제적 동기 부여 체계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본문 169쪽

 

어떤 사람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실내 스키장이 두바이에 있다는 사실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페르시아 만. 북위 25도.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여름에 바깥 기온은 섭씨 40도 정도다. 겨울에는 23도까지 내려가기도 한다. 하루에 적어도 12시간씩 일주일 내내 개장하는 스키 시설은 전체 면적이 2만 2500제곱미터에 달한다. (…) 스키장 내부 온도를 낮추는 데 얼마나 많은 연료가 들어가는지 말하기도 겁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것을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 사막 한가운데 스키장을 짓는 게 경제적으로 합리적이라고? 그렇다. 사람들이 돈을 내고 입장할 용의가 있다면 왜 안 되는가? 이것이 우리가 던질 줄 아는 유일한 질문이다. 이 경제 체제가 공평한가? 경제학이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는가? 이 경제 체제가 사람들의 잠재력을 낭비하는가? 사람들의 안전을 충분히 보장하는가? 세계의 자원을 낭비하는가? 의미 있는 고용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가? 현재의 주류 경제학적 논리 안에서는 이 질문 중 어느 것도 제기할 수 없다.

-본문 211쪽

 

신자유주의자들은 정치를 없애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들은 ‘정치가 시장을 섬기기’를 바란다.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를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경쟁과 합리적 행동을 장려해 경제를 이끌고 지지하고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신자유주의 경제학 이론은 정치가 경제에 손을 못 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정치가 손을 바쁘게 놀리도록 하는 상태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본문 214쪽

 

유치원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의 변화를 불러일으키기로 마음먹으면 맨 먼저 여자아이들이 체육 시간에 입는 분홍색 발레복을 공격한다. “체육 시간에 성별로 정형화된 옷을 입는 것은 허용할 수 없습니다. 우리처럼 사회적으로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나라에서는 말이지요. 우리 아이들은 자유로운 개인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따라서 여자아이들은 주름 장식이 들어간 분홍색 발레복을 입고 체육 시간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는 정형화된 성 역할에 끼워 맞추게 될 수 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좋은 의도로 그런 말을 한 유치원 교사도 남자아이들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분홍색 발레복은 정형화된 성 이미지에 따르는 것이지만, 그와 비슷하게 정형화된 남자아이의 운동복은 중성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남성성은 거의 항상 이런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본문 241쪽

 

 

 

<출판사 리뷰>

 

 

왜 세계의 절반은 누락되었을까?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혹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시작점이 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등장하는 유명한 구절이다. 당시 애덤 스미스는  빵집 주인이 빵을 굽고, 양조장 주인이 술을 빚는 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윤을 취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라도 있는 것처럼 세상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누락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여성이다. 정치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개인의 이익 추구 본능에 대해 언급했을 때,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으로 그를 돌봐준 어머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국부론』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국부론』에 등장하는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이 이기심을 발휘해 돈을 벌 수 있던 것도 그의 아이를 키우고 식사를 준비하고 텃밭에서 채소를 키운 그들의 아내 혹은 누이 덕분이었다.

애덤 스미스가 구상한 세상은 단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었다. 남성만이, 그리고 그가 하는 일만이 의미를 갖는 경제. 애덤 스미스가 어머니를 망각하면서 그에게서 시작된 사상의 갈래가 불완전한 모습을 띠게 되었고, 경제학이 점점 중요해짐에 따라 이 근본적인 실수는 너무도 널리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애덤 스미스의 경제적 인간과

보이지 않는 여성들

 

애덤 스미스의 경제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인간의 모델로 구상한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즉 경제적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경제적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늘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계산적이고 두려움이 없다. 그는 이성, 독립성, 이기심 등 우리가 전통적으로 남성성과 동일시하는 문화적 특성을 모두 지녔다. 따라서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남성’에 한정된 모델이 되었다. 반대로, 이와 상반되는 특성인 감정, 의존성, 자기희생, 연대감 등은 여성의 특성으로 모두 몰아넣었고, 여성은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비경제적인 존재로 규정되었다.

오랫동안 여성의 노동은 비가시적이고 늘 존재하는 인프라로 간주되어 왔다. 짐바브웨의 로펠트에 사는 한 젊은 여성이 있다. 그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11킬로미터를 걸어서 양동이 하나에 물을 채운다. 집에 돌아오면 땔감을 모으고, 점심을 차리고, 설거지를 한 다음 채소를 수확하러 나간다. 그리고 다시 물을 길으러 길을 나선다. 돌아와 저녁을 짓고 동생들을 재우면 밤 9시가 된다. 그러나 경제학 모델에 따르면, 그녀의 고된 노동은 경제 수치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즉, 그녀는 하루 종일 노동하지만 비생산적이고 비경제적인 존재로 취급된다(본문 93쪽). 캐나다 국가 통계청의 조사 결과, 무보수 노동이 국가 GDP의 30.6〜41.4%를 차지하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30.6%라는 수치는 무보수 노동을 보수 노동으로 대체하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 것인지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고, 41.4%는 가사노동자가 집안일 대신 다른 노동을 했을 때 얼마나 벌 수 있을지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보든 엄청난 수치다(본문 95쪽).

그러나 굳이 수치로 환산해 보지 않아도, 이러한 활동이 경제 성장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한 사회에서 적절한 양육 및 돌봄 체계 없이 양적 성장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행복하고 건강한 아이들은 사회의 긍정적 성장의 기반이다. 그리고 이 자원들은 상당 부분 무보수 가사노동의 결과로 양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의 유용성과 가치에 대해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상할 정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여성의 적은 여성이다?

성불평등을 영속화하는 경제 구조

 

많은 여성이 보수를 받는 고용시장에 진출하게 된 현재도 상황은 비슷하다. 누군가는 여성의 사회 진출 비율을 들어 사회가 평등해졌다고, 여성도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았느냐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경제활동 때문에 포기한 가사노동을 위해 고용되는 것은 또 다른 여성들이다.

세계적으로 많은 여성들이 이주 노동으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해결한다. 많은 나라에서 여성 이민자들이 고국에 보내는 돈은 해외 원조와 외국인 투자를 합친 것보다 국가 경제에 더 큰 기여를 한다. 필리핀은 이 송금액이 GDP의 10%를 차지한다(본문 92쪽). 그러나 한편으로, 원래 청소를 해야 했을 사람—서구 가정의 여성—의 시급보다 가사 도우미의 시급이 현저히 낮지 않으면 가사 도우미를 쓰는 것이 경제적으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여성 사이의 불평등이 지속되게 된다.

또한 가사 도우미를 비롯해 돌봄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비율이 높다는 사실은 남녀 간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돌봄 산업의 임금이 낮아서 주로 여성들이 그 분야에 종사하는 것일까, 주로 여성들이 일하기 때문에 그 분야의 임금이 낮은 것일까? 확실한 것은 남녀 간 경제적 불평등의 가장 큰 이유가 여성이 남성보다 돌봄 산업에 더 많이 종사하기 때문이고, 이는 애덤 스미스 이후 사회에서 벌어지는 행위의 목적을 돈 또는 사랑,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사랑에서 나오기 때문에 경제적 보상이 중요치 않은 행위이고, 물질적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은 자기 이익 추구 욕구에 의한 경제적 행위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모든 행위의 목적을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을까?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도 돈을 요구했다?

 

크림전쟁(1853~1856) 당시 맹활약한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의 이미지는 돈에 관심이 없는, 조용하고 수줍은 천사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이팅게일은 경제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싸움꾼에 더 가까웠다. 나이팅게일은 간호사들이 정당한 보수를 받게 하려 평생을 싸웠다. 그녀는 선한 일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간호사들의 적은 보수를 정당화할 수는 없으며, 이들의 노동에 더 많은 보수가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선행을 하는 것과 경제적으로 잘살기를 원하는 것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땅에서 선한 일을 수행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도 돈은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본문 185쪽).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때 돈이나 선의 중 한 가지 요인만이 동기가 된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다. 게다가 이 개념은 전통적으로 성별에 관해 우리가 가진 이미지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남성은 자기 이익 추구라는 본능에 의해 나아가고 여성은 전체적인 그림을 조화롭게 만드는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본능이 성별에 관계없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사실 그것이 진실에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인정받기를 원하고, 돈은 그에 대한 보상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돈을 필요로 한다. 여성들도 말이다. 그러나 선한 일의 목적이 물질적 보상이라고 했을 때 이를 탐욕적인 것으로 간주한다면, 돌봄 업종에 대부분 종사하는 여성에 대한 경제적 차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숨 돌렸지만 여전히 불안하고 우울한 여성들

 

1963년, 기자였던 베티 프리댄은 스미스 여대 동창생들이 졸업 후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했다. 이 명문대를 졸업한 여성들은 대부분 교외 주택단지에 살면서 아침마다 가족을 위해 식탁을 멋지게 차리고, 주말이면 뜰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며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이들의 웃음 뒤에는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불안감, 성적 불만, 절망감, 우울증에 고통받는 삶이 있었다. 이들은 욕망을 억누르고 판에 박힌 선한 아내의 모습을 연기하며 신경 안정제의 도움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이 현상을 표현할 만한 단어가 없어 베티 프리댄은 이를 ‘이름 없는 문제’라고 불렀다(본문 97쪽).

21세기 들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여성 해방이 화두에 오르며, 이 ‘이름 없는 문제’는 자취를 감추고 여성들에게 끝없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았다. 동등한 권리와 자유가 있으니 시장에서 마음껏 경쟁하라!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 구조 자체는 여전히 남성 중심이고, 여성은 이곳에서 힘들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직장에서는 “집에서 살림이나 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이 충분히 경제적인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해 남성들보다 훨씬 더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도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는 것은 여성의 역할로 간주된다. 직장에서 남자들과 경쟁하고 적당한 배우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시부모를 섬기고, 집안을 깨끗이 정돈하고, 운동을 열심히 해 ‘자기 관리’도 철저히 하는 슈퍼우먼이 되라는 조언을 듣는다.

이로 인해 여성은 여전히 남성에 비해 스트레스를 더 심하게 받고 시간 부족을 호소한다. 계층과 상관없고, 결혼을 했는지의 여부도 상관없으며, 돈을 얼마나 많이 버는지, 어느 나라에 사는지, 자녀의 유무도 상관없다. 여성들이 이런 느낌을 받을 때 주로 비난받는 것은 페미니즘이다. 여성이 경제활동을 하며 고통받는다는 사실은 여성이 애초에 비경제적인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본문 101쪽).

이에 대해 미국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은 페미니즘이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파이를 만드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단순히 남성 중심 구조에 여성을 추가해 섞는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예전에 소녀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던 “너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어”는 “너는 모든 것이 되어야 해”로 바뀌었고, 이러한 강박은 여성들을 더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잊은 자들에게 미래는 없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는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된 주류 경제학에 유쾌하지만 날카로운 일침을 날린다. 애덤 스미스가 자기 이익 추구 욕구로 돌아가는 사회를 생각하는 동안 자신을 돌봐준 어머니를 까맣게 잊었고, 그가 사회를 보는 관점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여성들이 겪는 성불평등과 경제적 불안정의 시초가 되었다. 저자 카트리네 마르살은 현재 주류 경제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페미니즘은 필수적이며, 이는 성불평등부터 인구 증가, 복지 체계에 대한 문제부터 노령화 사회에 닥칠 인력 부족에까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 확보’ 이상의 훨씬 큰 문제에 관한 것이다. 그동안 많은 진보를 거듭하기는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이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세상에 걸맞도록 사회, 경제, 정치에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작업에 착수해야 하고, 이는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를 경제학에 포함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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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소개

저자 : 카트리네 마르살

카트리네 마르살은 웁살라대학교를 졸업하고 스웨덴의 유력 일간지 『아프톤블라데트(Aftonbladet)』의 편집주간을 지내며 국제 금융 · 정치와 페미니즘에 대한 기사를 주로 썼다. 경제학과 가부장제의 관계를 논한 저서 『유일한 성(Det enda könet)』으로 2012년 스웨덴 내 유력 문학상인 아우구스트프리세트(Augustpriset)의 논픽션 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다른 저서로 『강간과 로맨스(Våldtäkt och romantik)』 『회색의 구조(Den grå vågen)』가 있다. 현재 영국 런던에서 거주하고 있다.

역자 : 김희정

서울대 영문학과와 한국외국어대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했다. 가족과 함께 영국에 살면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진화의 배신》 《랩 걸》 《인간의 품격》 《어떻게 죽을 것인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이 있다.
 

미디어속 부키 책

[매일경제] `보이지 않는 손` 애덤 스미스가 못 본 것들

  2017년 2월 10일 매일경제 김시균 기자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서평기사 `보이지 않는 손` 애덤 스미스가 못 본 것들

[경향신문] 하나일 수 없는 역사 外

2017년 2월 10일 경향신문 편집국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서평기사 하나일 수 없는 역사 外  

[문화일보] “스미스 ‘국부론’ 여성역할 배제 아쉬워”

  2017년 2월 10일 문화일보 김인구 기자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서평기사 “스미스 ‘국부론’ 여성역할 배제 아쉬워”

[부산일보] `여성`을 빠트린 `국부론`의 오류

  2017년 2월 10일 부산일보 박진숙 기자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서평기사  '여성'을 빠트린 '국부론'의 오류

[해럴드경제] 경제를 보는 다른 시각, 여자

  2017년 2월 9일 해럴드경제 이윤미 기자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서평기사 경제를 보는 다른 시각, 여자

[뉴시스] 이기심,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

  2017년 2월 9일 뉴시스 손정빈 기자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서평기사 이기심,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  

[연합뉴스] 육아와 여성노동, 경제학으로 들여다보기

2017년 2월 9일 연합뉴스  김계연 기자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서평기사 육아와 여성노동, 경제학으로 들여다보기  

[노컷뉴스] 애덤 스미스, 여성노동·가사노동을 보지 못했다

  2017년 2월 12일 노컷뉴스  김영태 기자의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서평기사 애덤 스미스, 여성노동·가사노동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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