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내전 [리커버 양장본]

검사내전 [리커버 양장본]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저자 : 김웅
분야 : 정치/사회
출간일 : 2019-07-05
ISBN : 9788960517257
가격 : 15,000원

*2018년 올해의책(조선일보/동아일보/시사인) *2019년을 여는 책(매일경제) *2019년 상반기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1위(교보문고) *2019년 11월, jtbc 드라마 방영 확정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에서 ‘검사’로 살아간다는 것 “세상을 속이는 권모술수로 승자처럼 권세···

책소개

검사내전 [리커버 양장본]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2018년 올해의책(조선일보/동아일보/시사인)

*2019년을 여는 책(매일경제)

*2019년 상반기 정치사회 베스트셀러 1위(교보문고)

*2019년 11월, jtbc 드라마 방영 확정

 

드라마가 아닌 현실 속에서

‘검사’로 살아간다는 것

“세상을 속이는 권모술수로 승자처럼 권세를 부리거나 각광을 훔치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지만, 하루하루 촌로처럼 혹은 청소부처럼 생활로서 검사 일을 하는 검사들도 있다.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본문 383쪽)

저자 김웅은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이래 18년간 검사 일을 해왔다. 그런데 굳이 스스로를 ‘생활형 검사’라고 지칭한다. 검사란 이 사회에서 권력의 중심에 있는 힘 있는 자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대목이다. 그저 직업으로서 밥벌이하며 살아가려고 고시 공부해 검사가 됐다는 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검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지겹도록 많이 등장하는 소재다. 거기서 검사는 보통 ‘거악의 근원’이거나 반대로 불의를 일거에 해소하는 ‘정의로운’ 존재로 설정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극적인 이야기들이 ‘현실’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검사들과 별로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드라마와 달리 검찰도 일반 회사와 거의 같고, 그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보통의 직장인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중에는 각광을 챙겨 정치에 입문하거나 더 높은 자리로 가려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스스로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말하는 저자 같은 사람도 있지만, 그런 다양한 인물 군상은 어느 조직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생활로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는 것이고, 검사들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그렇기에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여객선의 작은 나사못’으로 살아가겠다던 어느 선배 검사에게서, 소위 잘나간다는 그 어떤 선배들에게도 느껴보지 못한 ‘존경’라는 감정을 느끼며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첫 책 『검사내전』은 바로 그렇게 ‘생활형 검사’로 열심히 살아온 저자가 검찰 ‘안’에서 경험한 이야기들이자, 검사라는 ‘직업’ 덕분에 알게 된 세상살이, 사람살이를 둘러싼 그의 ‘속마음’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당청꼴찌 ‘또라이’ 검사

그 남자의 직장생활

 

흔히들 ‘검사’ 하면 권력 지향적이고 야망에 가득 찬 사람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소위 있는 집 자손이 아니라 하더라도 일단 검사만 되면 잘나가는 집안과 결혼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람, 김웅은 어쩌다 보니 검사가 됐단다. 어려서부터 검사를 꿈꿔본 적 단 한 번도 없었고 엉겁결에 검사가 됐다는 것이다. 행간을 읽어보자면, 어떤 일을 하며 밥벌이를 할까 생각하다가 그저 직업으로서 검사가 되기로 선택하고 고시 공부를 했다는 얘기다. 무딘 각오조차 없이 시작해서일까? 저자의 초임 검사 생활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각종 사건 처리 통계가 좋지 않아 ‘당청꼴찌’, 그러니까 ‘우리 청에서 꼴찌’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을 뿐 아니라 검찰 조직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폭탄주’ 마시는 일도 너무 힘들어했다. 덕분에 조직에서 눈총을 받은 것은 물론이다.

 

초임 시절 날 가장 괴롭힌 것은 당청꼴찌라는 평가나 폭우처럼 쏟아지는 업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술과 회식이었다. (…) 얼마나 폭탄주가 싫었던지, 회식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당직을 서기도 했다. 내가 검사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파악한 부장은 회식 때 폭탄주를 돌리다가 내 순서가 되면 왜 아직도 사표를 쓰지 않고 조직에 남아 있느냐고 짜증을 냈다. 그러고는 폭탄주는 검사만 마셔야 한다면서 나를 건너뛰고 다른 검사에게 폭탄주를 넘기기도 했다. _ 본문 238쪽

 

그런 까닭에 저자 스스로 자기 신세가 ‘토방에 사는 생쥐 꼴’이었다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눅이 들어 조용히 숨죽여 지내는 타입은 아니었다. 직업적 야망이 없어서인지, 그는 상대가 검사장이든 차장검사든 가리지 않고 ‘욱’ 하는 성미에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또라이’였다. 예를 들어 그는 어느 봄날, 검사장이 굳이 자기 고향에서 체육행사를 연 것을 두고 비꼬다가 행사장에서 쫓겨난다.

 

“다만, 기왕 이런 행사를 할 거면 우리 관할 지역에서 개최해 갈비탕 한 그릇이라도 팔아줬으면 불황에 시달리는 지역 주민들이 좋아했을 것 같은데 그게 좀 아쉽습니다.” (…) 벌써 20년이 되어가지만 난 그때 검사장이 외쳤던 말을 기억한다. “이래서 검사들은 안 돼. 여기는 대한민국 아니야.” (…) 선배들이 나에게 얼른 나가라고 했고 (…) 서커스 난장을 벗어나는데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리더라. 사람들의 눈빛만으로 나는 그들의 생각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모지리’, ‘부적응자’, 대강 그런 단어들이 생생하게 들렸으니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_ 본문 234~235쪽

 

저자는 자신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냉소적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실은 제대로 가르치려는 것일 뿐이라는 미명하에 간부들이 벌이는 변덕스럽고 무지몽매한 행태에 불편함을 내비친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조직의 단합’이라는 이름 아래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평소처럼 밤늦게 야근을 하고 있는데 차장검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차장검사가 법원 판사들과 회식을 한 모양인데, 2차로 간 술집에서 흥이 과했던지 (…) 그 자리에서 각자의 부하직원들을 호출해 어느 쪽이 더 많이 나오는지를 내기한 것이다. 부르기만 하면 마냥 달려오는 것을 바랄 거면 개를 기르면 된다. 그것도 아키타나 진돗개, 허스키처럼 충성심 강한 개를 기르면 되는데 왜 그런 짓으로 귀한 시간을 소비하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 각 부의 총무검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차장의 지시를 그대로 전달한 뒤 나는 계속 사무실에 남아 일을 했다. 차장이 나에게 나오라고 말한 것은 아니었고, 또 차장은 잘 몰랐겠지만 검사는 개가 아니다. _ 본문 238~239쪽

 

결국 내기에서 진 차장검사가 다음 날 부장검사들을 불러 화룰 냈고, 저자는 아침부터 부장에게 불려가 욕을 먹는다. 부장이 충무공 이순신을 거론하며 조직의 단합을 운운하자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그게 단합이면, 그럼 제가 술 마시다 차장님을 불러도 차장님이 나와 주나요?”(본문 240쪽) 덕분에 두고두고 ‘또라이’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그래도 그는 ‘검사 생활하는 데 별 탈은 없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일반인의 막연한 선입견과 달리 그 당시 검찰의 문화가 유연했다’는 데서 찾는다. 의견 대립이 있어도 평검사의 의견을 함부로 배척하지 못했고 검사들도 자신의 명예와 기개를 위해 직을 걸곤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일면 조직에 부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검사라는 직분으로 살아가는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 비록 특별한 소명의식이나 야망은 없었지만, 유연한 조직 문화 덕분에 ‘나 같은 놈도 검찰에 빌붙어 있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검사실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범죄 피의자와 피해자를 만나고 사건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은 단지 법을 집행하는 것을 넘어 사람과 세상을 좀 더 깊이 알아 나가는 일이 된다.

 

 

사기 공화국에서 만난

인간의 삶과 욕망

 

검사로서의 경력 대부분을 형사부에서 보내며 사기 사건을 많이 다룬 저자는 지금 이 나라가 ‘사기 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회 전체에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사악한 짓도 마다하지 않는 욕망이 들끓고 있다는 것이다. 한 해에 24만 건에 달하는 사기 사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한 피해액도 3조 원이 넘는단다. 그는 이렇듯 사기 사건이 넘쳐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기가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에서 사기꾼은 어지간해서는 제대로 된 죗값을 받지 않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충분한 동기가 부여되고, 그런 까닭에 재범률이 77%에 이른다는 것이다. 사기꾼 10명 중 8명은 한 번 잡혔다가도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얘기다.

하지만 저자는 사건 피의자들과 피해자들을 만나며, 범죄 자체가 내뿜는 악에 집중하기보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욕망과 그로 인해 드리워진 삶의 그림자들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가 ‘검사란 사람 공부하기 좋은 자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가 보기에 사기 사건의 대부분은 범죄자의 욕망과 피해자의 욕망이 결합해 만들어낸 화학작용이다.

 

목사님이 허술한 사기에 속은 것은 그것이 사실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치밀한 수에 속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에 당한 것이다. (…) 호메로스는 만약 인간이 자기 운명보다 더 많은 고통을 당했다면 그것은 신들 탓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의 장님 때문이라고 했다. 안 박사 일당의 유혹이 사기라는 신호는 밤하늘의 별보다 많았다. 등기부를 떼어보기만 했어도, 잔고증명서의 명의인을 살펴보기만 했어도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정원이 남산에서 내곡동으로 이전한 것도 2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 많은 정보들을, 목사님은 못 본 것이 아니라 안 본 것이다. 밤하늘에 별이 아무리 많아도 욕심이라는 간섭조명이 생기면 보이지 않는다. _ 본문 70~71쪽

 

문제는 그 ‘마음속의 장님’으로 인해 생긴 범죄 피해의 결과가 어렵게 지탱하고 있던 삶의 근간을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설령 범인을 잡는다 해도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고 삶을 원상복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사기꾼들에게 걸리면 누구라도 그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 그러니 제발 범죄 피해를 당하지 마시라. 피해자도 헌법상 기본권이 보장된 우리나라 국민이지만 실제로는 2등 국민이다.”라고 말한다.(본문 69쪽) 게다가 대개 사기 범죄의 피해자들은 형편이 좋지 않은 서민들이다. 그래서 그는 사기꾼 할머니가 선의를 빙자해 힘겹게 살아가는 식당 아주머니를 등친 사건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강 씨는 조사를 받으면서, 할머니가 설마 자기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을 등칠 줄 몰랐다며 흐느꼈다. 그러나 만만한 데 말뚝 박고, 생가지보다 마른 가지 꺾는 법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니까 사기 치는 것이다. (…)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기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느냐고 안심하지 마시라. _ 본문 86쪽

 

저자는 이렇듯 끊임없이 ‘거짓’과 싸워야 하는 검사 일을 하다 보니 한때는 사람 말을 믿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을 만나는 게 지겨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시간이 흘러 다시 보람을 느끼게 된 것은 이 일을 하다 보면 다른 인생의 찢어진 틈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꿰매주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란다. 물론 더러는 서툰 솜씨로 찢어진 상처를 더 헤집기도 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늘 자신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검사 생활을 계속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악질 전세 사기꾼에게 당한 한 건실한 청년과의 마지막 만남을 이렇게 회고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에게 뭔가 멋진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바보 같게도 나는 그에게 살다 보니 세상이 다 사기 같다고 말했다. (…) 정의와 법치주의를 부르짖는 검찰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사기의 주연일지 모른다. 어쩌면 개처럼 일하는 형사부 검사들의 선의와 신실함이 이 사기의 가장 화려한 기술로 악용되었을지 모른다. (…) 횡설수설을 다 들어주던 영민 씨는 가방에서 팩우유를 꺼내 우리 방에 있던 믹스커피 두 봉을 탔다. 팩우유를 흔들던 영민 씨는 더블 샷이라고 말하며 내게 웃어 보였다. 청년의 웃음이 그리 무거운 것은 처음이었다. 구르고 채여도, 그래도 영민 씨는 대한민국의 국가대표이다. 늘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검사 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가끔 이런 국가대표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이다. _ 본문 109~110쪽

 

검사가 성실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약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얼핏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검사의 연관 검색어가 ‘떡검’, ‘검새’인 판국에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되는 양 말하는 것이 마음에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말했듯 세상의 ‘선악과 미추가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댓글처럼 그리 쉽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검사실에서 마주하는 인생의 파열들이 직선적이고 단편적일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들여다볼수록 다양하고 모순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검사실에서 벌어지는 한바탕 소나기 같은 소란들이 늘 새로운 여행 같았고, 그래서 계속 검사실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결코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검사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직업인데, 또 남의 말을 절대로 안 듣는 직업이기도 하다. 검사라는 직업이 참 맹랑한 게, 어서 말을 하라고 하고서 정작 말을 하면 거짓말한다고 윽박지르곤 한다.”(본문 138쪽) 검사라는 직업의 양면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저자가 검사실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현실들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분명한 건, 저자가 보기에 세상의 모든 것들은 ‘곡선이고 움직이며’, 직선으로 흐르는 건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상적으로 범죄를 다루어야 하는 검사는 더더욱 세상의 일들을 직선적으로 추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신묘한 추측과 귀신같은 추리는 대개 독이다. 그런 추측과 망상을 댓글로 쓰는 거야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검사가 그런 추리소설을 써나간다면 무척이나 죄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공명심과 대중의 환호는 양심을 마취시키고 사람들이 바라는 결말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망을 만든다. 대개 언론 플레이를 잘하고 거물 행세하는 검사들에게 그런 면이 있다. 빈약한 상상력 대신 후흑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대중이 원하는 결론을 만들어내 정의의 사도로 각광 받는다. 정의의 사도가 각광을 챙기고 떠나면 다음 세대는 그 부작용으로 고통을 받는다. 물론 꼭 공명심이나 각광을 탐해서 직선적인 추측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직선적인 추정은 편리할 뿐 아니라 피로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떻게 인천공항 활주로처럼 직선이겠는가. 모든 살아 있는 것은 곡선이고 움직인다. 사람이 경직되는 것은 오직 죽었을 때뿐이다. 그래서 직선적인 추측은 죽음을 상징한다. _ 본문 253쪽

 

하지만 현실은 또 다르다. 직선적인 추정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로는 그 함정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검찰청 앞에서 수개월간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공기청정기가 유해함을 알리는 피켓 시위를 하던 한 남자를 그저 ‘조직 부적응자’나 ‘블랙 컨슈머’ 정도로 치부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나서야 그의 진심을 알 수 있었다. 그가 폐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제품으로 인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를 소비자들을 걱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가 그 많은 시간 동안 피케팅을 할 때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검찰에서는 구속까지 했다. 검찰은 그 사람의 진심을 보지 못했다. 변명하자면 그건 검사실에서 이타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한여름에 눈을 보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행동 원인을 찾을 때 공익이나 이타적인 목적 따위는 고려해본 적이 없다. 그 사람이 길 위에서 보낸 그 많은 시간을 해석하면서 나도 그렇고 다른 검사들도 그렇고 결코 이타심이라는 가설을 세워본 적이 없다. 서민 아파트 아이들이 등교하다 지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아파트에 울타리를 치는 사람들, 장애인 학교를 막기 위해 삭발하는 사람들, 신공항을 유치하기 위해 삭발하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어두워졌다. _ 본문 150쪽

 

저자는 자신을 포함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는 감정적 경향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직선적인 추정을 선호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이야기의 뒷면과 진짜 사연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산도박’에 연루된 일당을 검거한 뒤, 출소 후 24시간 만에 다시 잡혀온 한 아주머니의 딸을 불러 험악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려 보려 한 것도, 이후 아주머니를 비교적 처벌이 약한 죄목으로 기소했던 것도 어쩌면 자신이 비록 죄를 다루는 검사라 하더라도 세상사를 단편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는지 모른다.

 

꺼이꺼이 우는 엄마를 가슴에 품은 딸은 “괴않다, 괴않다, 울지 마라”라고 기도하듯 읊조린다. 엄마는 딸에게 차마 집에 들어갈 면목이 없었다고, 내가 죽일 년이라고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 파드득 홰를 치듯 죽어가는 형광등과 소리 없는 눈물과 어깨가 들먹거려지는 통곡 속에서 어쩐지 나는 평생을 살아도 세상의 절반도 알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나는 박 여사를 도박개장죄가 아니라 도박방조죄로 기소했다. 지청장이 날 부르더니 왜 도박방조냐고 물었다. 집에도 못 가보고 구속되었다고 하자 아무 말도 않고 결재 도장을 찍어주었다. (…) 나 때문에 딸아이의 힘든 무게를 나눠 질 수 없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산도박의 엑스트라에 불과한 박 여사 하나 교도소에 가둬놓는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도 않는다. 딸도 용서한 엄마인데 내가 뭐라고 죗값을 묻겠는가. _ 본문 219~220쪽

 

저자는 가끔 누군가 ‘법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산도박 아주머니와 그 딸아이가 생각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법에 대한 거창한 화두를 가지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보통의 사람들과 사연들을 접하면서 법이 우리 사회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비교적 소상히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에게 ‘검사실’이란 ‘현실과 이상, 법의 지배와 실제적인 정의, 법적 안정성과 현실적인 법 감정 사이의 대립과 긴장을 직접 마주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요구들과 그것들이 어떻게 법으로 반영되는지, 또 어떻게 왜곡되며 법 실무가들에 의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런 그곳에서 그가 만난 법은 결코 이상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누군가 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 사회에서는 ‘법대로 하자’는 말을 자주 쓰곤 한다. 이 말은 결국 재판으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것인데, 저자가 보기에 이는 매우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도발로 ‘널 반드시 박멸시키겠다’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에 의한 분쟁 해결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보다 새로운 분쟁과 갈등을 낳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자는 재판이란 실제로 옳은 것을 가리는 절차가 아니며, 원칙과 규범을 따르기보다 대중의 욕구와 분노에 좌우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재판도, 잔 다르크의 재판도 그랬으며, 이후 많은 재판들이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적인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복수심을 만족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19세기 이후 대중들은 복수심과 분노에 가득 차 멜레토스의 법으로 공포의 제국을 세웠다. 하지만 법이란 이름으로 일도양단의 보복적인 처단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정의를 빙자해 자신의 복수심을 만족시키려는 것에 불과하다. (…) 한순간의 분노가 가라앉으면 후회, 그리고 그 칼이 자신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공포가 밀려올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까닭은 권력을 탐하기 때문이다. 그런 흉계가 우리 사회의 갈등을 더욱 키우고 검찰권으로 대변되는 국가권력을 누가 손에 쥘 것인가에 대한 피 튀기는 싸움만 낳게 만드는 것이다. _ 본문 276쪽

저자 소개

 

김 웅

1970년 전라남도 여천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인천지검에서 첫 경력을 시작한 이래 창원지검 진주지청,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광주지검 순천지청에서 평검사 생활을 했으며, 광주지검 순천지청을 시작으로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에서 부부장검사 시절을 보냈다. 이후 광주지검 해남지청장과 법무부 법무연수원 대외연수과장을 거쳐, 현재는 첫 경력을 시작한 인천지검에서 자신과는 평생 인연이 닿지 않을 것 같았던 공안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은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말한 것처럼 검찰에서의 ‘직장생활’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검사로서 생활하는 데 별 탈은 없었다’고 덧붙인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유연하고 열려 있는 조직 문화 덕분이었다. 그에게 검사라는 직분은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거악의 근원도, 불의를 일거에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장치도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그저 ‘나사못’처럼 살아가겠다던 어느 선배의 이야기가, 그에게는 ‘생활인으로서 검사’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첫 책이 세상의 독자들과 만나게 된 이유다.

분명한 것은, 법과 처벌로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입법 만능주의’와 ‘형사처벌 편의주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결국 검찰과 수사기관이 국민과 기업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간섭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비군 훈련에 불참하는 것, 승선 인원을 제대로 적지 않는 것, 영업 신고를 하지 않는 것 등 검사인 자신이 봐도 납득하기 어려운 법규 위반까지 죄다 범죄로 만들어놓는 것은 결코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는 형사처벌이란 진통제와 같아서 자꾸 먹다 보면 내성이 생기고 점점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너무 많은 형사처벌로 인해 범죄 간의 경중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기 쉽고,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하고 강력한 범죄, 계획적인 재산 범죄, 대규모 경제 범죄 등에 대해서 터무니없이 온정적인 판결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처벌 대상은 줄이고 정작 본질적인 범죄에 대해서는 엄중하고 공평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형사처벌 조항이 이런 것들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한다는 얘기다.

저자는 검찰과 수사기관이 모든 분야에 개입할 수 있게 된 데는 민사재판의 형해화 등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나 형사처벌 조항이 범람하는 것도 주요한 원인이라면서, 형사처벌 조항을 줄이고 민사 분쟁을 형사 사건으로 변질시키는 고소·고발 제도를 개선한다면 검찰권과 수사기관의 전횡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검찰권과 수사기관에 대한 비난이나 인물 갈아치우기만 한다면 결국 이름만 달리한 수많은 수사기관들의 전횡으로 국민들의 자유만 침해받게 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미국의 법사학자 로렌스 프리드먼은 “사회는 명백히 원하는 범죄의 양을 스스로 결정한다”라고 말했다. 범죄의 양이 많아지면 범죄에 둔감해지고 법을 경시하게 된다. 또한 범죄를 지나치게 많이 원하면 검찰이나 수사기관의 힘이 거대해진다. 그 부작용으로 검사들은 엄청난 업무 강도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관둬라. 검사 일 하고 싶은 사람 줄을 섰다”라거나 “왕관을 원하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라는 말은 하지 마시라. 왕관을 써야 하는 것은 국민이다. 그게 헌법 제1조가 말하는 민주공화국이다. _ 본문 378쪽

 

저자에게 ‘법’이란 결국 ‘인간’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함이 법의 중심에 있을 때, 결국 법에 의한 정의든 뭐든 가능해지는 셈이다. 그리고 그에게 인간의 존엄성이란 눈물 흘리기 좋은 감성적인 소재가 아니라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냉철하고 엄중한 과제이자 요구이다. 따라서 그에게 존엄한 것이란 두려운 것이고 원시적인 것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어쩌다 보니 검사가 됐지만, 준비 없이 시작했다고 해서 꼭 오염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주변이나 데울 수 있는 검사가 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온기’가 아직 남아 있어 이 책을 쓰게 됐는지도 모른다고 덧붙인다. 어쩌면 그가 말하는 그 ‘온기’가 바로 ‘인간’과 ‘법’, 그리고 두렵고 원시적인 ‘존엄함’에 대한 그의 생각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그가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말한 것이 단지 복지부동한 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왔다는 게 아니라, 다른 데 욕심내기보다 ‘검사라는 직분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책이 바로 그 치열함의 기록이라고 생각할 때, 한번 일독해 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가끔 집 소파에 앉아 야구를 보며 맥주 한잔 마실 때가 있다. 야구가 끝나고 소파에 누워 꾸벅꾸벅 졸 때면 마술처럼 세상을 다 가진 듯 떠들썩하게 웃고 마시던 그 시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거악을 일소하지는 못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의 나사못 역할이나 제대로 해보자고 선의를 불태웠던, 항하사처럼 넘쳐흐르던 거품 속에서의 다짐들도 아쉬움 속에 지나간다. 어쩌면 이 책은 그 아쉬움의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_ 본문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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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소개

저자 : 김웅

1970년 전라남도 여천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1997년 39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00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인천지검에서 첫 경력을 시작한 이래 창원지검 진주지청,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 광주지검 순천지청에서 평검사 생활을 했으며, 광주지검 순천지청을 시작으로 서울남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에서 부부장검사 시절을 보냈다. 이후 광주지검 해남지청장과 법무부 법무연수원 대외연수과장을 거쳐, 현재는 첫 경력을 시작한 인천지검에서 자신과는 평생 인연이 닿지 않을 것 같았던 공안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스스로 ‘자신은 조직에 맞지 않는 타입’이라고 말한 것처럼 검찰에서의 ‘직장생활’이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검사로서 생활하는 데 별 탈은 없었다’고 덧붙인다.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유연하고 열려 있는 조직 문화 덕분이었다. 그에게 검사라는 직분은 드라마 속에서나 볼 법한 거악의 근원도, 불의를 일거에 해결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장치도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 그저 ‘나사못’처럼 살아가겠다던 어느 선배의 이야기가, 그에게는 ‘생활인으로서 검사’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비난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늘 보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생활형 검사로 살아봤는데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의 첫 책이 세상의 독자들과 만나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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