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오바마를 당선시킨 그 청년들은 누구인가?
21세기 선거는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자가 지배한다
2002년 우리나라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당선,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당선. 당시 이 두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세력으로 ‘네티즌’을 지목하는 이들이 많다. 어느덧 정치인마다 네티즌에게 어필하기 위해 SNS(소셜 네트워킹 서비스) 계정을 개설해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정치인은 이 네티즌들이나 청년 세대가 누구이며, 인터넷이나 트위터 등의 정보 기술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기본적인 이해조차 되어 있지 않은 채 섣불리 접근하다 망신을 사기도 했다. 이를테면, 2004년 한나라당은 인터넷 여론을 움직이기 위한 ‘네티즌 10만 양병설’과 같은 주장을 대선 전략 보고서에 담아 발표하기도 했고, 2011년 10.26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 출마한 나경원 후보는 자신의 트위터로 자화자찬 격의 메시지를 여러 차례 전송하다 네티즌들의 비웃음을 산 끝에 ‘시스템 오류’ 운운하며 궁색하게 수습에 나선 적도 있다. 또 네티즌 여론의 쏠림 현상에 대한 비판도 많다. 2010년 7월 소설가 이문열이 인터넷 댓글 문화를 비판하며 “인터넷은 심하게 말하면 집단 사기”라고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사회가 ‘네티즌’이나 ‘청년 세대’, ‘정보 기술’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이해하고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한다. 노무현과 오바마, 정말로 청년 네티즌이 당선시킨 대통령이 맞을까? 그렇다면 그동안 정치에는 무관심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청년층들이 어째서 대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2002년 노무현을 뽑았다는 그들은 왜 2007년에는 이명박을 ‘압도적으로’ 선택했을까? 그런 그들이 왜 2008년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촛불을 들었을까? 정말로 대규모의 사이버 전사를 양성하면 인터넷 여론을 바꿀 수 있을까? 인터넷이 발달한 선진 민주 국가도 많은데 왜 유독 한국과 미국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까? 네티즌들이 진보 성향 후보 쪽으로 쏠리는 것이 사실일까? 만약 이처럼 인터넷 여론과 동향에 의해 선거가 좌우된다면 21세기 민주주의의 풍경은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은 바로 위와 같은 질문들을 탐구하는 책이다. 노무현과 오바마를 당선시킨 한국과 미국의 청년 유권자들에게는 인터넷, 휴대폰, SNS, 블로그, 유튜브, 팟캐스트 등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new networked information technology)’이라는 도구가 있었다. 이 책은 이러한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을 적극 사용하는 젊은 층이 중요한 선거에서 캐스팅 보트(casting vote) 역할을 맡게 된 기제를 사회과학적 연구 방법론에 의거해 분석한다. 디지털 정보 기술 혁명은 그동안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세대로 여겨지던 젊은 층을 투표장으로 내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 정보화 시대를 맞아 민주주의의 풍경마저도 새롭게 바꾸었다. 이 책은 이를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흥미로운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2012년 한미 양국의 대선을 비롯해 앞으로 있을 중요한 선거의 향배를 짐작할 단서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주요 내용
네티즌이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면 그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핸드폰이든 이메일이든 블로그 게시물이든 어떤 네티즌이 어떤 메시지를 읽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일일이 추적해 계량화하지 않는 한 이에 대한 명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렵다.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에, 디지털 정보 기술 혁명이 세상을 바꾸고 SNS가 자리 잡은 지 이제 겨우 몇 년이어서 경험적 연구들이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래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젊은 유권자들이 실제로 정치 담론이나 선거 결과를 변화시켰다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는 연구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이 책 『소셜 정치혁명 세대의 탄생』은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을 사용하는 청년 네티즌들이 사이버 공간을 벗어나 현실 정치에 깊이 관여되기까지의 과정을 사회과학적 연구 방법론의 틀을 가져와 분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저자 한종우는 미국 시러큐스 대학 맥스웰 대학원 정치학과 교수로, IT와 정치, 정보화 시대 민주적 거버넌스, 사이버 행동주의와 민주주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한미 간 가교 역할로 미국 정치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월간 조선》이 선정한 “해외 학계를 주름잡는 한국인” 중 한 사람이다. 2007년부터 뉴욕 라디오 코리아에서 미국 대선과 정치 관련 시사 프로그램을 2년간 진행하며 오바마의 대선을 집중 관찰하고 분석하는 기회를 가졌고, 이 주제에 대한 학술적 논의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정치 실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는 이미 2010년 “인터넷은 집단 사기”라는 이문열의 발언이 나온 즉시 반박하는 글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에게 사이버 공간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지평이 열리는 가능성과 잠재력의 공간이다.
이 책의 1장에서는 19세기 프랑스 사회과학자 토크빌이 미국에서 목격한 풀뿌리 민주주의 실험과 비교해, 21세기 한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네티즌의 정치 참여 현상을 ‘새로운 실험’으로 규정한다. 옛 실험이 구성원들 간의 대면적(face-to-face) 상호 작용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면 새로운 실험은 온라인상의 가상적 상호 작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저자는 국가이든 민족이든 100퍼센트 대면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 정치 공동체는 없으며 모든 정치 공동체가 가상성의 토대 위에 세워진 ‘상상된 공동체’임을 논하면서, 기존의 정치 공동체의 신뢰 기반도 그다지 탄탄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2장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했던 한국의 2030세대가 주요 정치 담론에 참여해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핵심 역할을 한 과정을 살펴본다. 저자는 386세대도 아닌 2030세대가 선거 정치에서 극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시험적 동원’이라는 중간 과정을 겪으며 ‘전시 효과’가 발휘된 것이라 분석한다.
3장에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결정과 관련해 한국 청년층이 공적 담론의 방향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살펴본다. 한국 대선 사상 최대 표 차로 당선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집권 100여 일 만에 사상 최저치로 곤두박질치고 다양한 사회 계층이 참여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로까지 이어진 이유를 분석하면서,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이 정치 담론 형성이나 정치 위기의 전개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을 매개로 한 정치에서는 누가 핵심 행위자인지와 같은 중요한 문제들을 탐구한다.
4장에서는 오바마 돌풍을 다룬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했던 미국 Y세대가 2008년 미국 대선 때 선거 정치에 갑작스럽게 유입된 원인을 분석한다. 9.11 테러, 이라크 전쟁과 같은 주요 국가적 위기에 자극받은 미국 청년 유권자들은 SNS, 핸드폰 등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을 활용해 세대적 공감을 형성해 냈다. 저자는 오바마의 선거 캠프가 Y세대라는 ‘블루 오션’을 발견하고 이들이 ‘롱테일 효과’를 발휘해 ‘사소한 다수’에서 ‘결정적인 다수’로 발전했다고 분석한다.
5장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첫 100일 동안 마이크로블로깅 매체인 트위터가 의료 개혁 입법, 히스패닉계 최초 연방 대법관 지명과 같은 정치 쟁점에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살펴본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청년층이 중요한 정치적 쟁점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그들의 트위터 메시지, 답글, 전달(리트윗), 추가 정보 탐색을 위한 URL 클릭 등을 취합해 분석한다.
6장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사례를 토대로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을 매개로 활성화된 청년층의 정치 참여가 가까운 장래에 어떻게 전개될지 전망하고, 정보화 시대의 선거 및 정치 담론에 어떤 변화가 일지 예상해 본다.
‘핸드폰 보이’들이 이끄는 소셜 정치혁명
전 세계적으로 민주화가 전파되어 자리 잡은 이래 젊은 유권자들은 어느 시기, 어느 사회에나 있었으며 이들은 전반적으로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그런데 유독 노무현과 오바마가 당선된 대선에서 이 젊은 층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인류는 동굴 벽화, 상형 문자, 봉화, 전신, 인쇄 기술 등 정보 기술(IT)을 끊임없이 사용해 왔지만, 그 정보 기술이 현재와 같이 모두 ‘네트워크화’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만큼 정보를 확산시키는 속도는 빨라졌고 그 닿는 범위는 최댓값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인터넷에서 최근의 SNS까지 등을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이라 칭한다. 20세기와는 다르게 21세기 청년 세대가 중요한 선거에서 결정적인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 원인은 바로 이러한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을 가장 활발히 사용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뽑은 한국 청년층에게는 핸드폰이, 오바마를 뽑은 미국 청년층에게는 트위터가 있었다. 이들은 각 사회에서 이러한 정보 기술 매체를 가장 잘 사용하는 집단이었다. 한국 젊은이들은 대선 당일 투표를 독려하는 문자 메시지와 통화를 무수히 교환했으며, 미국 젊은이들은 대선 자금 모금부터 선거 쟁점 파악에 이르기까지 트위터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정보들을 끌어모으고 다른 이들에게 전달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사람들이 몇 안 되는 신문과 방송, 잡지에 의해 선택된 정보를 일방적으로 강요당했다. 쌍방향적 통신 기술이 부재했기에 정치 의사를 표출하거나 행동에 옮기고 대안 담론을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의 등장으로 유권자들은 대중 매체의 손을 거치지 않고도 자유롭게 콘텐츠를 제작하고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거의 헐값에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대중 매체가 중심이 된 산업화 시대의 공론장이 ‘네트워크 공론장(networked public sphere)’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른바 ‘정보화 정치’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길거리를 지나다 경찰이나 제도 권력이 시민을 탄압하거나 각종 사회 부조리가 발생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웹상으로 퍼 나르며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시한다. 미국 서부 시대를 주름잡았던 카우보이들과도 같이, 이제 ‘걸어 다니는 개인 방송국이요 신문사’라 할 수 있는 ‘핸드폰 보이’가 출현한 것이다. 이들은 관심 있는 정치인이나 쟁점이 있으면 관련 정보를 모으고 전달하며, 자주 가는 블로그나 동호회를 중심으로 의견을 교환한다. 심지어 직접 이미지나 동영상을 제작해 유포하고 공유한다. 그동안 대중 매체의 일방적인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에 의해 배제되던 정치 의제와 논리 들도 네트워크 공론장에서는 주류로 부상할 수 있게 되었다. ‘빅 브라더(Big Brother)’에 집중된 힘이 분산되어 도처에 보이지 않는 ‘리틀 시스터들(little sisters)’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는 정치권력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혁명적인 변화다. 이제 권력은 네트워크 참여자이자 신기술의 이용자에게 넘어왔다. 다수가 권력을 스스로 점유·행사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핸드폰 보이들이 주축이 된 네트워크 공론장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에 더욱 가까워진 셈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청년 세대가 킹메이커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핸드폰 보이의 주축을 이루는 세대가 386세대와 더불어 2030세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386세대는 오랜 군사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를 이루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사회 운동의 경험이 풍부한 세대인 반면에, 2030세대는 민주주의 기반과 물질적 풍요의 토대에서 자라나 개인주의가 만연한 세대였다. 그런데 2030세대는 어떻게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게 된 것일까?
저자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비참여적이었던 청년층이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선 ①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이 사회에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보급되어야 하고, 청년층 유권자들이 이를 집중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② 청년층에 호소력이 큰 비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이 있어야 하며, 이 사건들을 계기로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에 의해 유발된) 시험적 동원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③ 그 동원의 결과 세대 의식과 결속력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30세대는 세대적인 응집력을 발휘한 경험이 없었으며 스스로를 한 세대의 일부가 아닌 개인으로서만 인식했다. 이들이 세대적인 결속을 다지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을 갖게 된 것은 스포츠라는 비정치적 영역을 통해서였다. 이들은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 트랙 1500미터 결승에서 김동성 선수가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 탓에 금메달을 놓쳤을 때 미국 올림픽 위원회 공식 웹 사이트로 몰려가 항의했고, 그해 5~6월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때는 ‘붉은 악마’ 응원 열기의 주역이 되었다. 2030세대는 이런 경험을 통해 사이버 공간에서 의제를 설정하고 합의를 모으며 실제 행동을 조직하고 구성하는 자신들의 힘을 인식하게 되었다. 여기에, 월드컵 직후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이들 또한 거국적인 반미 촛불 집회에 합류하게 되었다. 2030세대는 이런 일련의 사건에 ‘시험적으로 동원되며’ 인터넷 커뮤니티의 위력 및 자신들의 정치적 잠재력을 깨닫게 되었고, 어느새 결집된 정치 세력으로 전환할 준비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이것이 그해 12월의 16대 대선에서 마침내 노무현 후보 쏠림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이 중요한 매개가 되었다.
노무현에서 이명박으로… 2030세대의 변절인가?
2007년 17대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정동영 후보를 큰 표 차로 따돌리고 당선되었다. 핸드폰이든 SNS이든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이 활발히 사용되지 않았으며 청년층조차 보수 후보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2002년 대선과는 정반대의 양상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새로운 실험’을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즉 젊은 네티즌들은 항상 특정 성향의 후보에게 표를 던진다는 오해다. 예를 들어, 한국 네티즌은 항상 진보 성향의 후보를, 미국 네티즌도 항상 민주당을 지지하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네티즌 역시 기존 권력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되거나 여론을 무시한 정책을 집행했을 때 그 권력을 심판하고자 하는 것뿐이다. 이들의 정치적 정향(定向)을 고정화해 파악하는 것은 잘못이며, 향후 상황에 따라, 인물의 특성에 따라 네티즌들은 진보 성향 후보를 지지할 수도, 보수 성향 후보를 지지할 수도 있다.
포용적 대북 정책, 부시 행정부와의 불편한 관계, 경제 정책의 미미한 성과, 보수 매체 및 검찰청 등 유력 제도 및 조직과의 불화 등 노 대통령이 추진한 개혁 정책은 당시 실패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게다가 2007년 대선의 쟁점은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가 화두였다. 또 이명박 후보의 상대 후보들이 지지 세가 약하거나 분열되어 있었기에 일찌감치 선거의 결과가 예상되는 맥 빠진 싸움이기도 했다. 실제로 17대 대선의 투표율은 16대 대선에 비해 10.5퍼센트포인트나 낮은 60.3퍼센트였다. 2004년 3월 12일 통과된 공직선거법에 의해 선거일 180일 전부터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사를 담은 문서, 사진, 광고 등의 유포·게시가 금지된 사실도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을 활용한 선거 운동을 현격히 감소시킨 원인이었다. 한마디로, 17대 대선을 16대 대선과 동일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다.
‘정치는 내 삶과 직결된 문제’… 다시 촛불을 든 청년들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116일 만에 지지도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지는 추락을 맛봤다. 취임 초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각종 근시안적 정책을 내놓거나 인선 오류를 빚어내 지지도 하락을 부추기더니, 취임 뒤에는 안전성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지 못한 채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결정해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전국적인 촛불 집회가 연일 계속되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서는 2030세대와 386세대의 지지 위에서 10대들이 대규모 반정부 촛불 시위를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2002년 대선에서 2030세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낸 것이 다른 세대에게 전시 효과(demonstration effect)로 기능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즉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위해 2030세대가 활약하는 것을 본 10대들이 자신들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이다.
또 10대들이 촛불 시위에 앞장선 이유는 광우병을 전염시킬 수 있다고 알려진 미국산 쇠고기가 학교 급식으로 제공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했다. 정치적 선택이 자신의 삶과 직결될 수 있음을 10대들이 깨닫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이는 영국 사회학자 기든스가 말한 ‘생활 정치(life politics)’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즉 평등이나 해방과 같은 전통적인 이슈가 아닌, 개인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슈일 경우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기든스에 따르면, 개인들은 생활 정치에 관심을 가질수록 전통적인 진리와 집단적 이데올로기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은 채 결정을 내리게 된다.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에 의해 활성화된 청년층 역시 중·장년층이나, 기존의 대중 매체 등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치와는 무관한 태도로 일관하던 청년층이 적극적인 참여자로 변모하게 되는 중요한 기제다.
청년층에서 선거 시장의 블루 오션을 발견한 오바마
2008년 미 대선에서 매케인을 누르고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된 오바마에게는 Y세대가 있었다. Y세대는 1980년대 중반에 출생해 2004년 대선에서 유권자가 된 18~32세의 청년층이다. 미국 선거 정치에 오바마 돌풍을 몰고 온 이 청년층은 ‘롱테일’이라 불린다. 롱테일(long tail)은 원래 통계학의 빈도 분포에서 쓰이는 용어로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덜한 부분’을 뜻하며, 마케팅 분야에 적용되면서는 ‘특정 시장 안에서 영향력이 없는 다수 소비자’라는 의미로 쓰였다. 마케팅의 관점에서는 80퍼센트의 ‘사소한 다수’보다는 20퍼센트이더라도 영향력이 막강한 ‘핵심 소수’를 만족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 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책 판매의 절반 이상이 상위 1300위권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그동안 ‘사소한 다수’로만 취급받던 고객층이 점차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상품과 고객을 연결하는 비용이 획기적으로 준 것도 이에 한몫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킨 Y세대 역시 그동안 비정치적이고 비참여적인 유권자층으로만 인식되다가,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을 적극 사용하는 동시에 오프라인 정치 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하면서 2008년 대선 예비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갑작스럽게 대규모의 유권자들이 흡수되어 선거의 당락까지 좌우하게 되자, 이들을 ‘오바마 롱테일’이라 부르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과거에는 사소하고 뿔뿔이 흩어져 있던 다수가 강력하게 결집된 다수로 변모한 것이었다.
오바마는 미지의 유권자층이었던 이들을 사로잡음으로써 선거 시장의 블루 오션을 개척한 셈이다. 이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정보를 교환하고 유권자를 동원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의 클린턴이나, 본선에서의 매케인 등에 비해 오바마는 트위터, 유튜브, 마이스페이스 등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을 이용한 청년층 공략에서 앞서 나갔다. 선거 자금 모금에서도 달랐다. 매케인이 전통적인 고액 기부자 중심의 모금 전략에 매진한 반면, 오바마는 소액 기부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전체 기부자 중에서 200달러 이하 기부자의 비중이 매케인이 34퍼센트였던 데 반해 오바마는 54퍼센트나 됐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전체 모금액에서 매케인의 두 배를 넘어섰다. 오바마는 대선 운동 기간에 공들여 구축했던 롱테일을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이후로도 이어 가고자 했다. 특히 트위터를 이용해 주요 정치, 개혁 의제를 퍼뜨리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의료 개혁 입법이라든지, 최초의 히스패닉계 연방 대법관 임명과 같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표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정보화 시대의 선거는 승률 마진이 크지 않다?… 그럼 대선의 향방은?
2012년 대선을 나란히 앞두고 있는 한국과 미국은 선거 구도가 어느 정도 고착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은 지역주의와 여촌야도, 보수 대 진보 구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또 승자 독식의 선거인단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미국은 50개 주의 친공화당, 친민주당 성향이 고정적이어서 몇 안 되는 ‘배틀그라운드 주’가 당락을 결정할 전망이다. 한미 모두 기존 정당들이 지지층 결집에 성공한다고 가정하면, 결국 적시적소에 집단적으로 몰표를 던질 수 있는 소셜 미디어 주도 세력이 선거의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결국 청년층이 어느 정당, 어느 후보로 연결되느냐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정치인들은 지지 여부가 고정되다시피 한 유권자 집단보다는,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집단적 투표 행위가 가능한 소수 집단에게 어필하고자 할 것이다. 이미 미국 대선에서는 히스패닉이나 동성애자 들을 타깃으로 하는 특화된 공약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승률 ‘마진’이 크지 않은 정보화 시대 선거에서는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을 주로 사용하며 가상 공간에서 정치적 집단 행위의 가능성을 확인해 가고 있는 젊은 유권자층이야말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은 집단 사기 공간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미래와 가능성이 잠재해 있는 공간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이 구현되는 사이버 공간은 대면 접촉이 이루어지는 실명 공간에 비해 신뢰성이나 책임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즉 대면 접촉도 없이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그 공간이 얼마나 진실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곧 가상 공간에서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잠식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치 공동체란 본질적으로 ‘상상된 공동체’이며, 구성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100퍼센트 알고 있는 정치 공동체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음을 생각할 때, 또 실명 공간에서조차 오랜 신뢰 관계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사기 사건이나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음을 고려하면, 사이버 공간의 가상성은 다른 정치 공동체의 가상성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물론 정보화 시대에 네트워크의 신뢰 기반을 좀먹는 ‘악플러’들과 사이버 공간의 폭발성을 악용하는 일부 세력의 정보 조작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정보를 조작하는 이들을 퇴출시키는 등 사이버 공간에서 책임과 신뢰에 입각한 자정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일이지, 이 새로운 공간이 창출하고 있는 정치적 가능성과 순기능을 간과한 채 부정적인 측면만을 문제 삼아 낙인찍고 폄하하고 심지어 규제의 칼을 들이대는 것은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일 것이다.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로 활성화된 소셜 정치혁명 세대들의 주 무대인 네트워크 공론장에서는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 대중 매체나 빅 브라더에 의해 일방적으로 걸러진 의제가 판치는 곳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의 이용자들이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고 교환하면서 형성된 여론의 장이다. 소수의 의견도 통용될 수 있고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이들의 의견이 취합될 수도 있어 민주주의의 기본 정의에 더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또 정치인에 대한 감시와 피드백이 빠르게 오감으로써 대의 민주주의 원리에도 더욱 충실한 편이다.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하고 만나 본 적도 없지만 정치적으로 공감해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시위 제안을 하고 타흐리르 광장에 집결한 젊은이들이 무바라크 대통령의 철권통치를 종결시킨 이집트의 예를 잘 알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단초를 드러낸 소셜 네트워크 세대의 정치혁명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되었다.
<추천사>
네티즌들의 쏠림 현상에 대해 그동안 단편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거나 추측에 그친 의견들은 많았다. 이 책은 구체적인 근거들과 명확한 논리로 설득력 있는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정보 기술이 만들어 낸 네트워크가 소모적인 공간이 아닌, 창의적이고 개방적인 소통의 장이며 정보화 시대의 새 공론장으로 기능한다는 이 책의 관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 고건 (전 국무총리)
SNS를 쓰는 청년 세대들은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다. 민주화 세대와는 다른 방법으로,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지금의 청년 네티즌들이 민주주의의 새 희망이 될 수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동시에 정치인으로서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 김현미 (국회의원)
흥미진진하면서도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사이버 시대 한국과 미국의 정치 현황을 비교·이해하는 데 유용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정보 혁명이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정치 실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문정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차례>
한국어판 서문
1. 사이버 공간의 새로운 정치 실험 - 가상 공간에 형성된 새로운 공론장
토크빌이 목격한 옛 실험과 사이버 공동체의 새 실험
정보화 시대 새로운 공론장의 탄생
동원의 경험이 정치적 잠재력의 자각으로
정치 공동체의 본질은 가상이다
가짜라고 하기엔 너무도 생생한 사이버 공동체
‘흩어졌던 다수’의 대반격
오바마, 관계의 기술로 청년층의 마음을 사로잡다
왜 한국과 미국인가?
각 장의 내용 요약
2. 한국 핸드폰 보이들, 정치에 눈을 뜨다
-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이 유발한 실험과 2002년 한국 대선
정보 기술이 사회적 자본을 잠식한다?
386세대와 2030세대
폭발적 전시 효과를 발휘한 386세대의 낙선 운동
스포츠로 결집한 2030세대, 촛불을 들다
노무현 일병 구하기
낮은 투표율? 결정적인 투표 블록!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이 정치적 영향력을 갖기 위한 조건들
3. 새로운 실험은 민주주의에 무엇을 예고하는가
-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위기에 처한 이명박 정부
한국 청년 세대가 거리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
하인리히 법칙으로 바라본 이명박 정부의 위기 전개 과정
정치적 선택이 곧 내 삶과 직결된다
거듭되는 위기 앞에 통제를 상실한 정부
재난의 경고와 징후들은 무시되었다
신네트워크 정보 기술이 민주주의에 끼칠 여파는?
4. 미국 선거 시장의 블루 오션, Y세대 - 오바마는 어떻게 Y세대를 포섭했나
오바마 현상?
청년 유권자들은 어떻게 오바마의 디지털 병사가 되었나
네트워크는 실시간으로 후보들을 들여다본다
오바마 롱테일이 된 Y세대는 누구인가?
하룻밤에 수십억?
오바마 롱테일의 정치적 파워
5. 오바마의 트위터 정치 - 트위터로 핵심 정치 의제 유포하기
메시지의 흐름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트위터
MC-OSN의 킹메이커 Y세대
트위터의 정보 공유 패턴
꼬리에 꼬리를 물며 퍼지는 오바마 메시지
트위터는 데이터의 금광
6. 결론 - 새로운 실험 이해하기
새로운 실험의 변형
2007년 한국 대선은 2002년 대선과 정반대인가?
감사의 말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시러큐스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를 취득한 후, 같은 대학 맥스웰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IT와 정치, 정보화 시대 민주적 거버넌스, 사이버 행동주의와 민주주의, 한국의 정치·경제와 정보화, 한국의 개발국가론, 북미 관계 등을 연구하고 가르쳐 왔으며 관련 논문도 다수 발표했다.
2002년부터 한미 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북한 김책공대와 시러큐스 대학 간의 IT교류 프로그램을 주도했다. 김책공대에 2005년 들어선 북한 최초의 디지털 도서관이 그 결과물이다. 최근에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전쟁 참전 미군 용사들의 인터뷰와 사진 등 역사적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디지털 기념관 프로젝트(www.kwvdm.org)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 한국전참전용사디지털기념관(Korean War Veterans Digital Memorial Foundation)의 재단 이사장으로 있다. 2007년부터 뉴욕 라디오 코리아에서 미국 대선과 정치에 관한 시사 프로그램을 2년간 진행한 바 있고, 현재 중부뉴욕 한국학교(www.cnyks.org) 교장으로도 봉사 중이다.
한국의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적 현상으로 설명하는 『Tracing the Lineage of the Develop-mental State and Democratization in Korea』(가제)와, 한국 내 북한 전문가들의 대표적 논문을 영어로 옮긴 책 『Understanding North Korea』(가제)가 올해 렉싱턴 북스(Lexington Books)를 통해 나올 예정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헤럴드경제』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푸르메재단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전문번역가로 좋은 책을 찾고 번역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초등학생이 꼭 알아야 할 경제 이야기』를 썼고 『다크 플랜』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오일카드』 『자기신뢰』 『부모가 알아야 할 장애 자녀 평생 설계』 『숏버스』 』『조금 달라도 괜찮아』『긍정의 배신』』『오! 당신들의 나라』『희망의 배신』『무언의 속삭임』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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