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경제, 간단명료하게 답해 주는 책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려 주면서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없을까? 주요 경제 문제들, 예를 들어 왜 소비보다 투자가 중요한지, 정부의 역할은 어느 정도가 적정선인지, 재정 파탄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대기업은 과연 사악하고 중소기업은 선한지, 시장을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하는지, 현재의 금융 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답해 주는 책은 없을까?
당대의 경제 사학자이자 경제 사상가 로버트 하일브로너와 발군의 경제 평론가 레스터 서로가 일반 독자들을 위해 집필한 이 책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 책에는 어려운 경제학 용어나 수식, 표나 그래프 등이 최소화되어 있다. 또 제기된 질문에 대한 답도 분명해서 경제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증명된 사실로, 이견이 있는 부분은 그 이견이 어떤 것인지, 경제학자들로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해결할 수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는다.
그 덕분에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경제학이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가 분명히 드러난다. 정치가나 경제학자들이 제시하는 경제 방향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하고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최대 매력이다.
경제학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아야 할까?
경제에 대해 알아야만 할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답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알아야 한다고 대답했다면 한 가지 질문이 추가된다. 그것은 바로 경제학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만약 경제학을 전공한 정도의 수준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 대신에 아주 두툼한, 경제학 전문 용어들이 수두룩한 그런 책을 고르기를 권한다. 반면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경제 현상에 대해 이해하고, 정치가나 경제학자들이 떠드는 경제 방향에 대해 나름대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는 정도라면 아마도 이 책이 제격일 것이다.
당대의 경제 사학자 로버트 하일브로너와 발군의 경제 평론가 레스터 서로가 공동 집필한 이 책이 ‘경제학 개론’에 해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목적이 다르다. 이 책은 두 저자의 말처럼 “독자들을 경제학자로 만들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단지 “일반 독자들이 경제 문제를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쓴 것일 뿐이다. 그래서 경제학 전문 용어는 기본적인 것만 등장하고, 경제학 책에 무수히 나오는 표나 그래프가 10여 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두 저자는 경제학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들답게 아주 명쾌하게 여러 경제 현안에 대한 우리의 안목을 넓혀 준다.
경제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가?
우선 제기되는 질문이 명확하다. 경제에서 왜 소비보다 투자가 중요한지, 정부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재정 파탄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대기업은 과연 사악하고 중소기업은 선한지, 시장을 어느 정도 신뢰해야 하는지, 현재 금융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여기에 대한 답도 분명하다. 경제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증명된 사실로, 이견이 있는 부분은 그 이견이 무엇인지, 경제학자들로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해결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 결과 경제학이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지가 드러난다. 그 과정에서 경제학이 우울한 과학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절감할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아래처럼 이해관계의 충돌이 얼마나 난감한 상황을 만드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도발적인 질문에 접했을 때가 특히 그렇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설명하는 바에 따르면 보다 저렴한 외국산 재화를 구매함으로써 비용이 절약되는 데 따른 이익에다가 자원과 노동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생기는 이익을 더하면 결국 실업에 따른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외국에서 연봉이 낮은 경제학자를 수입한 다음 국내 경제학자들에게는 다른 직업을 찾도록 해 보면 어떨까? 그래도 과연 동일한 결론을 내릴까? (303쪽)
하지만 이 책이 전해 주는 메시지는 ‘희망’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금융 위기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 아래 설명에서 보듯 자본주의의 속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주의 혁명은 예외 없이 공장에서 시작해서 주식 거래로 옮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었다. 생산 부문의 호황에 뒤따른 금융 부문 호황은 서서히 확대가 이루어지는 생산 부문과는 달리 대단히 기복이 심한 듯 보인다는 점이다. 금융 시장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갑작스럽게 급등했다가는 급락하곤 하는데, 이는 금융 시장 자체가 실제 시장의 확보 여부보다는 주로 미래 가치의 예측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금융 부문에서는 판매가 점진적으로 증대되어 안정기를 맞이했다가 서서히 떨어지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1920년대의 금융 호황이 1929년 금융 공황으로 끝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어느 날 갑자기 극적으로 하늘 높이까지 치솟았다가 땅바닥까지 추락하곤 하는 것이다. (318쪽)
자본주의, 그래도 희망적!
하지만 두 저자는 결국 이런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확신한다. 세계화의 물결 이후 통제되지 않는 외환 시장을 보면 확실히 자본주의가 자멸적 행태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자본주의에는 그 밖의 다른 사회 체제, 특히 소련 같은 사회주의 체제와는 달리 스스로 문제를 바로잡아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두 저자가 아래와 같이 자신 있게 ‘희망’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자신감의 근거이다.
역사는 확실히 확장하고자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에너지가 빚어 낸 사건들로 가득하다. 완강하게 저항하는 무산 계급을 창출해 낸 산업 혁명, 기업 간의 트러스트를 심화시킨 대량 생산, 1930년대까지 영향을 미친 대공황,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무수히 골칫거리를 양산하고 있는 현재의 세계화 등이 모두 자본주의 자체의 역동성에서 기인한다. 앞으로도 이런 ‘혁명적인’ 도전은 계속될 것이다. 생태계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지구 온난화 현상도 그 중 하나이다.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대처했던가? 산업 혁명으로 말미암아 기본적인 노동 조건에 대한 정부 규제가 생겨났다. 또 기업 간 트러스트에 대해서는 반(反)트러스트 법으로 대처했고, 대공황에 대해서는 뉴딜 정책으로 대응했다. 이제 세계화와 생태계 파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 상냥한 외계인으로부터 그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21세기의 지배적인 사회 경제학적 구조 속에서, 즉 자본주의 안에서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325~326쪽)
<차례>
머리말 5
1부 경제학의 기초 ―― 경제학, 경제 주체, 경제의 흐름
1 자본주의의 출현과 시장의 탄생13
2 경제학의 창시자, 혁명가, 구원 투수35
3 가계와 기업, 그리고 정부62
4 지금까지의 경제 흐름78
2부 거시 경제 ―― 경제 성장과 경기 침체의 분석
5 국내총생산은 무엇을 말해 주나?101
6 저축과 투자의 작용 원리114
7 소비의 수동성과 투자의 적극성127
8 공공 부문의 경제학142
9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161
10 통화란 무엇인가?174
11 통화는 어떻게 운용되나?186
3부 미시 경제 ―― 시장 체제의 해부
12 시장은 어떻게 움직이나?199
13 시장의 실패와 정부 개입214
14 독과점 시장과 기업 문제233
4부 현대 경제학의 고민 ―― 세계화, 양극화, 그리고 강박증
15 인플레이션에 대한 강박관념251
16 소득 불균형의 확대와 재생산265
17 세계화로 인한 문제의 복잡화278
18 세계화 시대의 경제 정책292
19 자본주의라는 미완의 혁명311
옮긴이 말 328
찾아보기 332
로버트 하일브로너(Robert Heilbroner)는 1919년 3월 24일 뉴욕 맨해튼 웨스트사이드의 부유한 독일계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초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1936년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하지만, 케인스주의자에서 전후 미국 내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변신한 스위지(Paul Sweezy)의 강의를 듣고 경제학의 매력에 빠져 슘페터(Joseph Schumpeter)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 아래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최우등으로 졸업한다.
1940년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하일브로너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워싱턴으로 가서 당대의 저명한 제도주의 경제학자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가 지휘하는 연방물가관리국에 합류한다. 이어서 육군정보국 소속으로 자리를 옮겨 일본어를 교육받고 일본군 포로들을 면담하는 업무를 맡은 그는, 이 과정에서 자신이 언어와 어휘 사용에 탁월한 재주가 있음을 깨닫고 전쟁이 끝나자 경제 문제와 관련한 글을 기고하는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다.
하일브로너는 특히 월간 시사•교양지 『하퍼스 매거진』에 여러 차례 글을 썼는데, 이것이 미국 유수의 출판사 사이먼 앤드 슈스터 편집자의 주목을 끌어 책을 써 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는 이 제안을 받아들여 이후 평생 동안 무려 20권에 달하는 책을 썼는데, 이 책들은 개정을 거듭하며 모두 1000만 권 이상이 팔렸고, 지금도 팔리고 있다.
뉴스쿨 대학교 사회과학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며 독일 역사학파를 대표하는 당대의 경제학자인 로웨(Adolph Lowe) 교수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은 하일브로너는 오늘날의 주류 경제학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자본주의에서 대한 관심과 인식은 사라지고 있는 반면 과학적 방법론에는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일브로너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은 모델 구축에 매력을 느끼지만, 이는 지나치게 오만한 시도로 경제학을 수학적 서술로 격하시킬 뿐”이다. 경제학이란 “진화하는 경제 체제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고안하는 학문”,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개선하기 위해 경제 체제의 본질과 논리에 대한 철학적인 분석을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새뮤얼슨(Paul Samuelson) 이래 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무수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박사 학위 논문은 ‘대중적’이라고 비판받았고, 박사 학위를 따는 데에는 17년이나 걸렸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급진적 보수주의자(radical conservative)’라고 말한다. 사회주의라고 부르는 평등을 향한 여러 가지 변화를 지지한다는 점에서는 급진적이되, 제도적 변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보수주의자라는 것이다.
레스터 서로(Lester Thurow)는 1938년 몬타나의 리빙스턴에서 태어나 윌리엄스 칼리지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고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1960년 영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철학 및 정치학, 경제학으로 석사 학위를, 1964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일찍이 ‘제로섬 사회’를 주창해 현재 및 미래 사회에 대해 탁월한 통찰력을 발휘하는 미래학자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존슨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을 역임한 후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를 거쳐 1968년 이후 MIT 경제경영학부 및 슬론 경영대학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서로는, 특히 급변하는 세계 경제 속에서 변화의 원동력을 진단하고 향후 움직임을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정평 있는데, 해박한 지식과 논리를 바탕으로 이론을 전개하여 지구촌 전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한다.
『타임』에서 ‘미래를 이끌어 갈 200인의 지도자’로 선정된 바 있는 서로의 저서로는 당대의 베스트셀러인 『제로섬 사회(Zero-Sum Society)』를 비롯해 『세계 경제 전쟁(Head to Head)』, 『자본주의의 미래(The Future of Capitalism)』, 『지식의 지배(Building Wealth)』 등이 있다.
조윤수는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미국, 러시아, 독일, 싱가포르, 쿠웨이트 등에서 근무했다. 미국 로체스터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하버드 대학교의 국제협상과정을 수료했다. 외교통상부 부대변인을 거쳐 미국 휴스턴 총영사로 부임할 예정이다. 저서로는 『세상 밖으로, 시간 속으로』, 『동남아시아의 선진복지국가 싱가포르』(공저), 『경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역서), 『독일 경제 어떻게 구할 것인가』(공역)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