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은 원래가 어렵고도 어렵다!
“저는 수학을 잘하는데, 도형은 왜 안 되죠?”
수학을 좋아한다는 중학생마저도 이렇게 묻곤 합니다. 아직 어린 중학생들에게 수학의 ‘도형’ 편은 그만큼 어렵기만 합니다. 설령 어른이라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도형은 원래가 어렵고도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중학교 과정에서 배우는 도형은 정확히 말해 ‘평면기하’에 해당됩니다. 기원전 3세기경 유클리드가 정리한 탓에 흔히 ‘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불리는, 평면상에서 도형의 여러 가지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인 거죠.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평면기하는 ‘토지 측량을 위해 도형을 연구하는 데서 기원했으며, 공간의 수리적(數理的)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인 기하학geometry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이 기하학은 탈레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에 의해 이미 기원전에 평면기하가 확립된 이래 근대의 데카르트, 오일러, 뉴턴, 라이프니츠, 로바체프스키, 리만 등에 의해 해석기하, 미분기하, 사영기하, 비(非)유클리드 기하, 위상기하로 발전해 가면서 수학뿐만 아니라 자연과학 전반에 걸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결국 평면기하, 즉 도형은 기하학의 기초, 그러니까 해석기하나 미분기하 같은 고급 기하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 단계에 해당하는 셈이죠.
추상적 사고에 논리적 사고까지!
이렇게 설명하면 이 도형이라는 게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도형은 구조적으로 잘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우선 도형은 추상적 사고뿐만 아니라 논리적 사고까지 요구합니다. 가령 맞꼭지각[對頂角] 정리의 경우를 보죠. 이걸 문장으로 풀어 말하면 ‘한 점 O에서 만나는 두 직선에 의해 만들어지는 4개의 각 중에서 꼭지점과 2개의 변을 공유하며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각인 맞꼭지각은 서로 같다.’가 됩니다. 이 중 ‘한 점 O에서 만나는 두 직선에 의해 만들어지는 4개의 각 중에서 꼭지점과 2개의 변을 공유하며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각’은 맞꼭지각의 정의(definition), 즉 뜻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맞꼭지각은 서로 같다’는 참이라고 증명된 명제 중에서도 기본이 되는 정리(theorem)에 해당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요? 그것도 단지 점은 위치만 있을 뿐 면적이 없다느니, 선은 길이만 있을 뿐 너비가 없다느니, 한 직선 밖의 한 점에서 이 점을 지나 주어진 직선과 만나지 않는 직선을 무수히 많이 그을 수 있다느니 하는 몇 개의 공리(axiom)만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결국 중학교에서 도형이란 증명하지 않고도 참이라고 인정하는 공리 몇 개와 용어의 뜻 몇십 개를 가지고 (중학교 과정에서만) 100여 개가 넘는 정리를 증명해 내고, 그 정리를 이용해 주어진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겁니다. 과연 이게 열서너 살짜리 아이들에게 쉬운 일일까요? 어른들이라면 쉽게 해낼 수 있는 일일까요?
도대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지?
문제는 수업 시간마저 부족하다는 겁니다. 도형의 경우 2학기 수학 수업 중에서도 일부밖에는 수업을 할애할 수가 없습니다. 확률이니 통계니 하는 것들도 가르쳐야 하니까요.
뭐, 그래도 한 100개 좀 넘게 정리를 증명하면 끝 아니냐고요? 문제는 그 각각의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정리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겁니다. 결국 증명 자체는 100개가 좀 넘을지 몰라도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앞의 증명을 반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한 만큼 증명을 적어도 몇백 개쯤은 해야 한다는 거죠.
게다가 그 과정에서 이제 열서너 살짜리 아이들에게 ‘증명 없이 참으로 인정하는 명제’로서 ‘기하학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에 해당하는 공리라는 희한한 놈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도 왜 점이 위치만 있을 수밖에 없는지, 직선에서는 너비가 있어서는 안 되는지를 납득시켜 가면서 말입니다.
물론 문제 풀이도 해 줘야 합니다. ‘자, 이 정리에 의하면 이렇지? 그 상태에서 저 정리를 이용하면 이렇게 되고…’ 해 가면서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선생님들도 자상하게 설명해 주기 어렵습니다. 하나 제대로 걸리면 한 30분 설명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으니까요. 예? 참고서 좋은 걸로 보면 되지 않느냐고요? 한번 찾아보십쇼. 의외로 도형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한 참고서는 보기 어렵습니다. 예쁘고 단정하게 정리된 참고서는 많지만…. 그렇다고 부모님이 도와줄 수도 없습니다. 부모님이 이공계 교수나 연구원이 아닌 이상 대개는 도형이 머릿속에서 싸악~! 지워졌기 때문입니다.
도형을 공부하면 생각하는 법이 저절로!
도형의 경우 아예 손을 놓아버리는 아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래도 별달리 문제될 것이 없어 보입니다. 도형 문제가 수학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체로 1/3 이하이니 그만큼의 점수만 포기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대학에 가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경험자들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중고등학교 시절 기하, 즉 도형은 요즘 아이들 하는 말로 하자면 ‘비추’였다. 집합, 방정식, 부등식, 함수, 수열, 극한, 미분, 적분, 확률, 통계 등은 실생활에서도 유용할 듯했다. 하지만 삼각형 내각의 크기 합이 180도라는 사실을 도대체 어디에 써먹는단 말인가.
학습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도 기하는 문제였다. 기하는 수학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고등학교 수학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생각이 오해라는 것을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야 알 수 있었다.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해석기하학이니, 미분기하학이니, 위상기하학이니, 아피 기하학이니, 뫼비우스 기하학이니 하는 별의별 희한한 기하학을 접하게 되고, 이런 것들이 실제 공학 부문에서 대단히 유용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한 덕분이다.
_ 박종백(지멘스 연구소장,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이공계나 그런 것 아니냐고요? 글쎄요…. 요즈음에는 사회과학 전공자들도 수학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사회과학이 점점 수학적으로 모델화되어 가면서 자칫 수학을 모르면 뒤처질 가능성이 높아진 탓이겠죠.
게다가 보다 중요한 건, 도형을 건너뜀으로써 두뇌 훈련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빼먹게 된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고요? 그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경험자의 입을 빌리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요즘은 ‘논리’라는 말이 비논리적일 정도로 너무 많이 쓰이지만,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와 집, 그리고 책과 TV에서 이 단어를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내 또래는 논리적이지 않았을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단지 논리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도 요즘 아이들 못지않게 논리 교육을 받았다. 언제? 수학 시간에.
계산을 하는 대수를 배울 때는 사실 논리적일 틈이 없었다. 계산하기 바빴기 때문에. 하지만 도형, 즉 기하는 달랐다. 기하는 문제를 무작정 많이 푼다든지 또는 좋은 선생님에게 차근차근 배운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생각을 해야 했다. 아니, 기하를 공부하다 보면 생각하는 법이 저절로 생겼다. _ 이정모(과학평론가)
미국에서 엘리트가 되려면 반드시 도형을!
기하학은 이렇듯 유용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기하학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서양에서는 이 기하학이라는 게 수사학, 문법, 음악 등과 함께 중세 이래 교양인이라면 누구나 익혀야 하는 7가지 자유 학예 중의 하나였을 정도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의 경우 엘리트가 되기 위해서는 중학 과정에서 반드시 이수해야 할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과학기술고 같은 곳에 가려면 중학교 때에 기하학을 이수해야 한다(‘미국 초·중·고, 수학·과학 선행학습 열풍’ _ 조선닷컴 2007년 8월 21일 남승우 기자 입력)고 할 정도니까요.
우리나라도 사정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습니다. 앞으로 대학 입시에서 관건으로 작용할 시험은 이른바 ‘통합 논술’이라고 하는데, 이 통합 논술의 기초가 되는 부분이 바로 논리적 사고이니까요.
어때요? 이제 도형을 한번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드나요? 만일 그렇다면 『친절한 도형 교과서』는 크게 도움이 될 겁니다. 이 책을 쓴 필자는 친절하고 유머러스한 설명으로 아이들에게 쉽게 수학의 개념을 잡아 준다고 정평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 책은 단순한 도형 문제의 풀이가 아닌 기하학적 기초를 다지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제 바쁜 선생님 붙잡고 늘어지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상위 20%를 위해 강의를 진행하는 학원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아도 됩니다. 『친절한 도형 교과서』가 옆에서 하나하나 상세하게 설명해 줄 테니까요.
<차례>
추천사 6
아름다운 수학 세상으로 함께 길을 떠날 친구들 9
수학을 사랑합니다! 10
아름다운 수학 세상으로 여행을 떠나는 아이들에게 12
PART 1 기하 입문 17
1 기하가 도대체 뭐길래… 19
2 오! 이게 그 유명한 유클리드의 『원론』 37
3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라고? 51
수학 요리 콘테스트 68
PART 2 정리와 증명 73
1 뭐? 점, 선, 면의 정체를 밝힌다고? 75
2 위에 있다, 사이, 합동? 그거 다 아는데… 83
3 증명, 명제, 그리고 정리 91
4 추론을 했으면 증명도 해야지! 101
수학 요리 콘테스트 120
PART 3 점·선·면 125
1 점, 선, 면은 모든 도형의 기본이지! 127
2 도형을 이루는 또 하나의 요소, 각 149
3 직선과 평면, 그리고 차원 161
4 도형의 작도를 자와 컴퍼스만으로? 181
수학 요리 콘테스트 194
PART 4 도형의 기초 199
1 삼각형을 결정하는 조건은? 201
2 다각형의 모델이 삼각형이라고요? 219
3 원과 정다면체는 삼차원 공간에서 산대요! 237
수학 요리 콘테스트 262 / 이 정도 문제쯤이야! 267
아름다운 수학 세상을 향한 여행을 마치며 269
‘이 정도 문제쯤이야!’ 풀이와 정답 270
찾아보기 272
꼼지샘 나숙자는 전남대학교 사범대 수학교육과를 나와 26년 동안 노화중, 성전중, 구로중, 구일중, 백석중, 성재중, 강신중 등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꼼지샘의 평소 지론이 ‘수학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인데, 이는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 ‘1/2+1/3=1/5’이라고 부득부득 우기는가 하면,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 학교에 남아 있어야 했던 아픈 기억 때문일 것이다.
꼼지샘은 학생들이 수학과 친근해지도록 수학 시 짓기, 수학 만화 그리기, 수학 일기 쓰기, 수학 신문 만들기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였으며, 방과 후 학교에 ‘학부모 수학 교실’을 운영하여 학부모들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꼼지샘에게 배운 학생들 가운데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모두 이런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꼼지샘은 수학 교육의 새로운 시도를 위해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수학 교육 전공으로 석사를 받았으며, 퇴직 후에도 가르쳤던 학생 및 학부모들과 ‘http://comzi.x-y.net’을 통해 만나고 있다.
신상희는 예술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제 스물두 살의 대학생. 두 눈이 있고 오른손이 있어 그림이나 글로 자신 안의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큰 축복으로 생각할 정도로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데다, 저자 나숙자 선생의 막내딸이라는 특수 관계까지 겹쳐 이 책의 그림 작업을 도맡아 하게 되었다. 완벽주의자적 본성을 못 버려 이 책의 그림을 그리느라 여름방학을 일에 파묻혀 지낸 비운의 주인공.